얼마전 “포천막걸리”를 일본 기업이 자국에 상표 등록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포털사이트가 떠들썩했던 일이 있었다. 보도가 있은 다음날 그 회사 사장이 한국인이고 상표등록이 포천막걸리의 수입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노라는 해명이 전해지면서 이 소동은 잠잠해졌다.
지리적 표시는 쉽게 말하면 지명이다. 그런데 지명이 위치만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것으로 소비자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라면 상품가치를 높여준다.
이런 지명을 상표법에서는 ‘산지’(産地)표시라고 하는데 특정인이 사용을 독점한다면 그 지역의 경쟁업자들은 산지표시를 할 수 없게 되고 소비자들도 상품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나 전형적으로 보호되지 않는 상표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WTO/TRIPs에서 유럽공동체(EU)가 농업보조금에 대한 양보 대가로 지리적 표시를 보호대상으로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포도주 및 증류주에 대해서는 각국에 보호 의무를 부과하여 강력한 보호를 받고 있다.
EU가 이렇게 지리적 표시 보호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이들 나라의 관련 농산물의 수출액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EU에는 약 4천8백개의 지리적 표시가 등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포도주와 증류주가 약 4천2백개로 전체의 87%를 넘는다.
프랑스를 예로 들면 593건의 등록된 지리적 표시가 연간 190억유로를 벌어들이면서 13만8천여개 농업조합의 생명줄이 되고 있고, 이탈리아는 420건으로 120억유로, 일자리 30만개 창출하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1990년 초반 4억5천만유로 정도였던 지리적 표시 농산품의 수출이 1990년 말에는 10억 유로 이상 증가했다.
EU는 WTO/TRIPs에 포함시키지 못한 샴페인이나 꼬냑과 같은 보통명칭에 대해서도 개별 FTA협상을 통해 보호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처럼 EU는 농업의 틈새시장으로 지리적 표시를 활용하여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들도 지역 공동브랜드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리적 표시를 발굴하고 등록을 확보하는 데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리적 표시는 농수산식품부의 일종의 품질인증마크(KPGI)인 지리적 표시 등록제와 특허청의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등록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등록요건이나 효력이 상당부분 중복되지만, 상표로서 지명과 상품명이 결합되어 등록되고, 농수산품은 물론 “이천도자기”와 같이 상품에 제한이 없다는 점에서 단체표장 쪽이 더 넓게 보호한다.
금년 11월말 현재 농수산식품부에 등록된 지리적 표시농산물이 58개, 특허청에 등록된 지리적 표시단체표장은 34개인데, 특허청은 연말까지 24개가 더 등록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출원되어 심사대기 중인 건을 고려하면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허청이 파악한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의 등록효과를 보면, “상주곶감”의 경우 등록을 전후하여 생산자 41%, 생산량 및 생산액은 23% 증가하여 연간 1천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으며, “영암무화과”는 생산량 18%, 생산액이 23%늘어 등록 1년 만에 2백억원에서 2백40억원으로 40억원 이상의 수입이 증가하였다.
공주의 “정안밤”은 등록 전에 비해 생산량은 5천 2백여톤으로 2백여톤(4%) 늘었을 뿐이지만 수입은 157억원으로 30억원 넘게 늘어(26%) 성과가 매우 큰 사례로 조사되었다. 이는 지리적 표시의 등록이 지역경제의 주름살을 펴는 블루칩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지리적 표시 등록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공동으로 추진하기 때문에 비용을 분담할 수 있고, 정부와 자치단체의 지원책도 있기 때문에 조건만 갖춘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포천 막걸리”도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으로 미리 우리나라와 일본에 등록해두었더라면 이번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2005년 7월 이 제도를 도입했고, 일본이 다음해에 지역단체상표 제도를 시행했으니 이런 가정은 비현실적일 수도 있겠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