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리사 전광출


 

얼마 전 ‘우리은행’ 서비스표등록이 무효라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있었다(매경이코노미 6.10.자). 이유는 상표법이 등록거절이유로 정한 ‘공공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할 염려가 있는 상표’에 해당한다는 것.

 

판결문의 핵심은 이렇다. ‘우리’라는 말은 ‘나’를 가리킬 때도 ‘우리’라고 할 정도로 우리 말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칭대명사로서 누구든지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요구는 일반 공공의 이익에 속하는 것이다. 양쪽 주장을 들어보니 ‘우리’라는 말의 자유로운 사용이 방해되고 말뜻에도 혼란이 일어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이므로 ‘우리은행’의 서비스표등록은 사회공익을 해하여 공공질서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우리은행’의 서비스표등록은 동종업계에서 누려야 할 ‘우리’라는 용어에 대한 이익을 특정인에게 독점시켜 특혜를 주는 것이므로 공정한 유통질서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판결문조차도 ‘우리은행’과 ‘우리 은행’이 구별되지 않아 ‘우리은행’을 ‘서비스표은행’, ‘우리 은행’을 ‘일상용어은행’이라고 바꾸어 사용하고 있고 판결문을 읽는 필자도 구별하느라 힘이 든다.

 

이번 대법원의 무효 판결로, 그 가치가 5천억원에서 2조원에 이른다는 ‘우리은행’ 표는 일단 상표법의 보호 밖으로 내쳐졌다. 앞으로 우리은행이 ‘우리은행’이라는 서비스표를 계속 사용할 수는 있지만 상표법이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상표법이라는 보호막 없더라도 부정경쟁방지법에 기댈 수 있다. ‘우리은행’이 널리 알려진 서비스표이므로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서비스표를 타인이 사용한다면 부정경쟁행위라 하여 사용금지청구 등의 청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져 우리은행이 부정경쟁행위 금지를 청구하는 소송을 내면 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 이번 판결의 논리는 등록을 해주면 그렇다는 것이지, 등록과 무관한 부정경쟁행위 판단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고 표현의 자유라는 공익은 이번 판결문 속에 갇히고 말 것이다.

 

사실 사건의 직접적인 발단은 2002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으로 출범한 한빛은행이 ‘우리은행’으로 개명할 때 금융감독 당국이 승인하면서 시작된다.  1991년 모 은행이 출범할 때 우리은행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려 했지만 금융당국이 이번 대법원판결과 비슷한 이유로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금융당국이 입장을 바꾼 이유는 모르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특허청이 ‘우리은행’이라는 서비스표를 등록해준 것과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자신보다 더 전문적인 기관인 특허청이 서비스표로 등록해 주었으니 근거가 생겼으니 말이다.

 

이번 사태에 무효심판을 청구한 시중은행들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특허청이 1999년 7월 ‘우리은행’이 등록예정임을 공고하여 이의신청의 기회를 주었지만 이들 중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고 있다가 등록 후 6년, 사용한 지 3년이 다 된 2005년에야 무효심판을 청구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은행도 고민이 될 것이다. 물론 계속 사용하는 것이 법규위반은 아니지만 ‘시장질서를 존중하고 공정한 금융질서 확립에 솔선수범하며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관습을 존중하고 국민정서에 반하는 행위를 지양한다’는 ‘우리’의 윤리강령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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