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이야기/특허
전 광 출
부당한 이득을 얻으려고 타인의 상표나 다른 기업의 이름으로 된 도메인이름을 미리 선점하는 이른바 사이버스쿼팅이 한 때 성행한 적이 있다. 이런 일은 상표등록에서도 일어난다.
그 업계에서는 꽤 알려진 상표인데 검색해보니 등록되지 않았다. 얼른 상표출원을 해서 등록을 받은 뒤 나중에 주인한테 팔면 한 밑천 잡지 않을까.
외국여행을 하다 보니 그곳에서는 상당히 알려진 상표가 있다. 저 정도면 우리나라에 수입될지도 모른다. 살짝 등록해두었다가 그 상표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거액을 받고 팔 수 있지 않을까.
외국의 브랜드를 수입해서 팔고 있는 한국 수입상이다. 그 브랜드가 우리나라에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 슬며시 내 이름으로 상표등록을 해두자. 다른 사람한테 수입권을 넘기겠다고 하면 그 때 상표권을 가지고 막아보자.
그러면 이런 ‘상표 스쿼팅’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심사 중이라면 정당한 권리자가 정보제공제도를 통해 상표등록을 거절시킬 수 있다. 상표가 출원공고 되었다면 이의신청을 해서 등록을 막을 수 있다. 등록되어 버렸다면 무효사유에 해당한다.
몇 년 전 일이다. 외국에서는 조립을 취미로 하는 이들에게 꽤 알려진 골프채 헤드가 있었다. 세계 장타대회에서 그 비거리 성능을 인정받은 클럽헤드라 우리나라 골퍼들에게는 인기가 있을 법하였다. 한국의 한 업체가 그 제품을 수입하였다 그런데 외국 업체는 한국수입상이 너무 높은 가격을 받는다며 독점수입계약을 깨고 다른 수입업자를 통해 상품을 한국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 제품의 상표는 한국에 등록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등록받지 못했던 그 외국 업체의 상호와 그 회사의 거의 모든 상표를 제3자가 분쟁 중에 출원해서 무더기로 등록을 받더니 원래의 수입업자가 전용사용권자로 등록되어 다른 수입업자들을 고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외국의 업체는 부랴부랴 이들 상표에 대해 무효심판을 신청했다. 수입상이 상표등록을 했다면 취소사유가 분명할 터인데 제3자가 상표등록을 하는 바람에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제거해야 할 상표가 10여개에달하고 무효심판이 특허법원의 소송으로 이어지자 그 외국 업체는 소송비용이 부담되어 자사의 홈페이지에 한국의 모 제품은 짝퉁이라는 공고만 올리고 특허법원 소송을 포기하고 말았다.
소송결과만 기다리던 한국의 다른 수입업자들은 형사고소까지 당한 상태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본래의 상표가 붙은 제품이 위조상품이 되어 진짜가 가짜가 되고, 가짜가 진짜가 되는 형국이었다. 앞으로는 그 상품을 팔지 않으면 되지만, 그동안의 판매사실 때문에 상표권 침해죄로 처벌받게 될 위기에 빠진 것이다.
고소된 이들은 필자에게 검찰에 진정서라도 넣어달라고 호소하였다. 필자는 진정서 대신 그동안 무효심판 절차에서 제출했던 주장과 증거들을 복사해 주었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격언이 있는데 검찰이 이들 자료를 살펴본다면 형식적인 법적용으로 이들을 처벌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전화가 왔다. 그들 모두 무혐의 처분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상표권 침해사실이 있었지만 고의였다고 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검찰이 짝퉁으로부터 궁지에 몰린 진짜들의 ‘눈물’을 본 것은 아니었을까.
예전에는 외국 상표를 등록하여 재미를 본 이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사이버스쿼팅’과 마찬가지로 ‘상표스쿼팅’도 쉽지 않다. 위 사건에서는 가짜 상표권자가 절반의 성공을 했을는지 모르지만 그마저도 지금은 법이 바뀌어 쉽지 않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