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배 승승장구론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유자광전」을 읽었다. 유자광(1439-1512)은 1467년 이시애의 난에 자원하여 종군했고, 세조의 총애를 받아 벼슬길에 접어든다. 1468년 남이 장군이 모반한다고 고변하여 공신이 되었고, 1476년에는 권신 한명회를 모함하고, 1478년에는 강직하고 청렴한 신하인 현석규를 모함하였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처벌은 받지 않았다. 그는 1498년 무오사화를 일으켜 신진사림들을 일망타진하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업신여겼던 김종직에게 묵은 원한을 풀었다. 연산군이 쫓겨났으면 그 역시 쫓겨날 만도 한데, 중종반정에 참여 하여 다시 공신이 된다. 오직 개인적 출세와 권력을 쫓았던 유자광은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왜 소인배 유자광은 승승장구했던가. 따져 보면, 세상은 언제나 유자광의 편이다. 이에 「소인배 승승장구론」을 쓴다.
10년 20년 겪어 보면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사람’이란 동물에 대해 알게 된다. 한 가지를 예를 들자면, 세상사람 모두가 부러워하는 출세코스와 권력은 주로 소인배들의 차지이고, 도덕적인 사람이 그런 자리에 가는 경우는 사뭇 드물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뻔한 이야기인데, 나는 어리석게도 이 이치를 쉰을 넘기고야 겨우 깨달았다.
사람들 만나느라 공부할 시간은 없고
소인배들의 특징은 대개 이러하다. 이들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많다. 마당발이다. 내가 대학에 있으니, 대학에서 목도한 경우를 들어본다. 이들은 교수이기는 하지만, 교수로서의 기본 임무인 연구와 교육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 대신 사람을 만나는 데 시간을 다 보낸다. 만나 술이라도 한 잔 하게 되면 상대방과 족보를 맞추어 본다. 사람살이 그렇지 않은가. 처음 보는 사이라 해도 성씨를 따지고 고향을 따지고, 살았던 곳을 따지고,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따지다 보면, 어느 곳에선가 반드시 겹치는 지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 지점을 확인하는 바로 그 순간 졸지에 선배와 후배가 된다. 형님, 아우님 하고 부르면서 십년지기처럼 가까운 사이가 된다.
이렇게 안면을 넓히고, 넓힌 안면은 늘 관리한다. 모임이란 모임은 다 참석하고, 상사나 혼사는 빠질 수 없다. 외국 가는 사람이 있으면 만나서 저녁도 먹고 여비도 찔러준다. 남을 돕기를 좋아하여 남의 어려운 사연을 들으면 참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이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고, 언젠가 그 사람이 자신에게 되갚아 줄 날을 기다린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모순에 대해 결코 불만을 토로하거나 비판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조직의 윗분의 터무니없는 행동과 불합리한 사안을 지적할 때면, 조용히 듣고만 있다. 분위기상 불가피하게 동조를 해야 한다면, ‘거 참 ……’ 하고 말꼬리를 흐린다. 반대로 조직의 윗분이 무언가 잘 한 일이 있으면 은근히(하지만 열심히) 추켜세우는 말을 늘어놓는다. 이 말은 곧 윗분의 귀에 들어간다. 이뿐이랴. 높은 분이 나타나는 곳에는 늘 얼굴을 내민다.
높은 분이 더 높은 분이 될 것 같으면 그 분에게 확실히 줄을 댄다. 줄을 당겨보고 튼튼하다 싶으면 아랫사람들을 쥐어짠다. 순식간에 실적이 올라가고 윗분은 흡족해 하신다. 이렇게 해서 그는 외부에(예컨대 신문과 방송)에 유능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다.
위로는 확실히 줄을 대고, 아랫사람들은 쥐어짜고
이런 과정을 몇 번 되풀이하면 그는 선거를 통해서든 승진을 통해서든 자기가 바라마지 않던 자리에 오르고 권력을 잡게 된다. 바라는 자리에 오기 전까지 남과 결코 각을 세우지 않던 소탈한 성격은 갑자기 독선과 아집이 된다. 자신이 관리하는 조직을 발전시키자면 공부가 필요한 법이건만, 사람을 만나기 위해 돌아다니느라 공부를 한 적이 없다. 그러니 참다운 발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고, 벌이는 사업 역시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출세를 위해 점수를 따려고 하는 일이기에 조직이 망가지든지 남이 죽든지 살든지 돌아볼 겨를이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유능한 사람으로 이름이 난다. 그의 생애 역시 유자광처럼 승승장구다. 이런 식으로 소인배들은 언제나 출세하는 법이다.
어떤가. 주위에 그런 사람은 없는가. 아마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언제나 소인배가 다스려 왔기 때문이다. 공자와 맹자가 다스리는 세상은 아마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