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조회 수 2555 추천 수 0 2009.03.30 20: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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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친구가 쓴 한시를 읽다가 ‘춘래불사춘’을 문득 떠 올린다.


정식으로 서당공부 한 사람같이....

그냥 좀 아는 정도를 넘어서 일상생활에 자유자재로

한시를 응용 할 수 있는 친구의 솜씨에

나는 그저 부러울 뿐이다.


한시라고 하면 거의 문외한인 내게........

유일하게 떠오르는 글귀라고는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이다.


비슬산 자연휴양림 입구 바위에 쓰인 樂山樂水” 를 보고 낙산낙수라고 읽었더니


아들놈이 “아빠!~ 요산요수라고 배웠는데?”......라고 한다.


얼굴이 화끈..... 아무 생각 없이 읊었는데 된통 걸렸다.

이럴 때는 정공법이 최선이라.......


“아... 아빠가 착각했네.. 옛날에 이거 시험에 무지 많이 나왔는데......”


이런 나의 뇌리에 왜 “춘래불사춘”이라는 글귀가 그렇게 남아 있었을까?

아마도 실크로드 변방 어딘가에서 흘렸을 왕소군의 눈물 때문이 아니었을까?.......


80년의 봄 군부독재가 시작 되었을 때 인구에 많이 회자 되었었고.....

요즈음 MB 때문에 다시 뜨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봄은 왔는데 봄이 아니다”


왜들……. 이렇게도 이 좋은 문장을 그런 진흙탕에다 비유를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중국 4대 미인은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이다.

중국애들 스스로 이렇게 규정했다.


침어낙안 (沈漁落雁),

기러기는 땅 밑으로 떨어지며, 물고기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폐월수화 (閉月羞花),

달은 구름 뒤로 얼굴 가리고, 꽃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네


물고기로 하여금 부끄러워 물밑으로 숨게 만들었다는....

월나라 미인 서시의 미모는 沈魚(침어)이다


거문고 타는 모습에 반한 기러기가 날갯짓을 멈춰 떨어졌다는.....

왕소군의 미모는落雁(낙안)이다.


고개 들어 달을 보자 달도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는....

초선의 미모는 閉月(폐월)이다.


꽃을 건드리자 꽃도 잎으로 가리며 부끄러워했다는......

양귀비의 미모는 羞花(수화)이다.


중국애들 과장하는 데는 천부적인 재질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식의 문학적 과장이라면 얼마든지 수용이 된다.

단지..... 물고기며, 달이며...꽃과 기러기까지

미인이라면 맥을 못 추는가...하는 생각이 잠깐.......


왕소군의 고사를 이야기 한다는 게 뜬금없이 사대미인 이야기로 빠졌네...

몇 년 전에 계림 근처의 양수오에 배낭여행을 갔다가 사온 사대미인도가

갑자기 떠올라서 그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한(漢)나라 원제(元帝)가 자구만 껄떡대며 괴롭히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흉노 왕에게 반반한 궁녀 하나를 주는 미인계를 쓰기로 했다.

하지만 원제도 꼴에 남자라고.....

그 많은 궁녀중 하나라도 남 주기는 아까웠던지,

궁녀들을 그린 초상화 그림책을 가져오게 해서 쭉 훑어보다가,

그 중에서 가장 못나게 생긴 왕소군을 찍었던 것이다.


원제란 놈이 궁녀가 너무 많다보니 제풀에 복이 겨워 양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그 마차가 닿는 곳에 있는 궁녀를 찍기도 하고 별에 별짓을 다 하였는데.....


몇 번 해보니 그것도 귀찮은지라 궁녀의 초상화 그림책을 만들어놓고는

생각날 때마다 그 리스트를 훑어보고 마음에 드는 궁녀를 픽업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요즘처럼 디카가 없었다는 이유 때문에 왕소군의 비극은 시작된다.

대박인생을 꿈꾸는 황실 궁녀들이 궁정화가 모연수에게 앞 다투어 찾아가

뇌물을 바쳐가며 뽀또샵을 졸라대니.........


기고만장 어깨에 잔뜩 힘을 넣은 모연수에게....

단 한사람......왕소군만이 모연수를 찾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의 미모에 자신만만했기 때문인지....아니면 야심이 없었던지......

어쨌든, 왕소군은 괘씸죄에 걸려 그림책에서 가장 못나게 그려지고 말았던 것이다.

원제란 넘이 꼴에 남자라고....

제일 못생긴 왕소군을 찍어서 흉노왕 앞에 불러 놓았는데....


어라........ 김태희 같기도 하고 김희선이 같기도 한 궁녀가 불려왔네...

이미 때는 늦었는데 어찌하리......체면에 물릴 수도 없고

안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왕소군을 보낸 원제......

바로 모연수를 불러 목을 친다.


이런 아련한 고사가 얽힌 이 ‘춘래불사춘’이라는 문장이....

실크로드를 밟아볼 날만 학수고대 하는 내게 선명히 남아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오랑캐의 땅으로 출발하는 때의 가련함과 슬픔을 읊은 시가 이태백의 시이고.......



<昭君怨(소군원)> - 이백


昭君拂玉鞍 (소군불옥안) 소군이 옥 안장 추어올려

上馬涕紅頰 (상마체홍협) 말에 오르니, 붉은 뺨에는 눈물이 흐르네.

今日漢宮人 (금일한궁인) 오늘은 한나라 궁녀이지만,

明朝胡地妾 (명조호지첩) 내일 아침이면 오랑캐 땅 첩이 되겠지.



변방에 끌려가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애끓는 마음 때문에 시들어 가는

왕소군의 애끓는 모습을 묘사한 시는

시인 동방규의 昭君怨(소군원)이라는 제목의 시로 남아 있다고 한다.


<昭君怨(소군원)> - 동방규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자연히 옷 띠가 헐렁해지니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이는 허리몸매 위함이 아니었도다.


일요일 아침에 친구의 글을 찬찬히 읽다가.....

퍼뜩 떠오른 춘래불사춘 이란 옛 문장이


나를 먼 과거의 그날로 돌아가...

시들어가는 왕소군을 구해 급하게 말을 달리며

흉노의 땅을 탈출해 나오는......


금빛갑옷에 장군검을 차고.....

왕소군을 앞에 안고 나는 듯이 적토마를 짓쳐나가는

그런 내 모습을 그려보게 만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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