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7일 비룡-잠룡 쌍선봉 연합산행에 참가했다. 어느덧 10여일이 지났다. 금년 들어 대둔산에 이어 두 번째로 목포 잠룡 동문들과 함께 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잠룡 동문들이 준비해 온 홍탁삼합에 농어찜 등 고향 맛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늦었지만 그날의 기록 영상을 정리해 올린다. 이 중에는 설영형 동문의 카메라에 잡힌 영상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양해를 구하며, 동문들의 산행 모습을 담느라 앞에 번쩍 뒤에 번쩍 활약한 노고에 감사드린다.
이날 산행 일정은 전북/부안군 ‘변산반도’의 내변산 ‘남여치’에서 목포의 잠룡팀을 만나 남여치→쌍선봉→월명암삼거리→월명암→자연보호헌장탑→내변산탐방지원센터 코스의 9km, 4시간 소요 예정으로 잡혔다.
전라북도 서남부에서 서해에 돌출한 변산반도(邊山半島)는 부안군/변산면-하서면-상서면-진서면에 걸쳐 있는데, 북쪽에 새만금과 남쪽에 곰소만을 둔 장장 99km의 해안선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일대는 천혜의 명승지로 1971/12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06/11일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공원 면적은 157㎢이며, 한국 유일의 반도공원이기도 하다.
변산(邊山)은 북쪽의 508.6m 의상봉을 최고봉으로 하고, 중앙의 쌍선봉(459.1m)-망포대(492.4m)-삼신산(486m)-신선봉(491m)-관음봉(424.5m)과 동쪽의 옥녀봉(432.7m)-상여봉(398m) 등을 아우르는 산군을 가리킨다. <삼국유사>에는 “백제 땅에 원래 변산(卞山)이 있으므로 변한(卞韓)이라고 한 것이다”라는 기록도 전하는 변산은 ‘조선 8경’ 또는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로 꼽혀 옛날에는 능가산·영주산·봉래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고 한다.
편의상 변산반도의 안쪽 산악지대를 ‘내변산’, 그 바깥쪽 바다 주변을 ‘외변산’으로 구별해 부르고들 있다.
05:45 수유동 집을 나설 때부터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기예보도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고 했으니 산행은 글렀구나 싶었다. 십중팔구 변산8경 중 하나인 채석범주(彩石帆舟)로 이름난 채석강(彩石江) 근처의 격포항에서 생선회나 먹고 돌아오지 생각했다.
06:50경 강남고속터미널 호남선 13번 문 앞에 당도하니 동기 백원주도 나와 있고 10회 이수상 동문도 보이고, 정순배 회장을 비롯해 윤익상 총대장, 황근수 대장, 서기완 총무 등 산행을 이끌고 총괄할 동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 동문들의 산행 모습을 담아줄 설영형 동문이 함께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당초 예상보다 조촐한 팀이 꾸려져 18명이 경기76-9724 관광버스에 탑승해 07:13 강남터미널을 출발했다. 수퍼맨 문웅비 부총무는 버스에 올라 배웅 인사만 하고 내려가 섭섭하기 짝이 없었다.
유리창에 내리치는 빗방울과 결로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경부고속도로(1)-천안·논산고속도로(25)-공주·서천고속도로(17)를 순차로 거치며 달린 듯 09:33 ‘부여백제’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었다.
서해안고속도로(15)에 진입한 다음 추수가 끝나 한가롭게 보이는 농촌 풍경이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전북 부안이 가까워오니 내리던 비도 그쳤다. 비룡-잠룡 가는 곳에 하늘이 도움을 주시는 것인가 싶었다.
변산반도에 이르러 새만금을 오른쪽에 두고 외변산의 해안을 따라 격포 방향으로 남서진하다가 고사포해수욕장을 앞두고 내변산으로 접어들었고, 10:48 ‘남여치’에 도착했다.
외변산은 암석해안의 해식애(海蝕崖)와 모래해안의 백사청송(白砂靑松) 등 해안경치가 으뜸이다. 격포리 해안에는 채석강(彩石江)과 적벽강(赤壁江)의 두 경승이 있는데, 강으로 부르고 있으나 하천이 아닌 해식애에 붙여진 이름이며, 변산해수욕장 고사포해수욕장 격포해수욕장 등 이름난 해수욕장들이 있다.
내변산의 경승은 300∼500m의 산지가 이루는 산악미와 계곡미 그리고 울창한 수림과 산중에 산재하는 사찰 등으로 이루어진다. 변산의 여러 기암봉과 그 사이사이에 낙조대 봉래구곡 직소폭포 선녀탕 분옥담 가마소 와룡소 울금바위 등의 경승지가 있고, 내소사와 개암사 월명암 실상사 등의 고찰이 산재해 있으며, 우금산성 유적도 있다.
목포에서 올라와 남여치에서 기다리던 28명 잠룡 동문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산행길 브리핑을 들은 뒤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10:56 산행을 시작해 꽤 가파른 길을 올라갔다. 기온이 좀 내려가 약간 쌀쌀하고 날씨가 흐렸지만 가파른 길이라 땀이 꽤 흘렀다. 비가 쏟아지지 않는 것만 다행으로 여기며 바람막이 상의를 벗어 배낭에 걸고 땀을 훔치며 올라갔다.
경사진 길에서 한번 쉬고, 11:42 능선에 오르니 바로 ‘쌍선봉 3거리’였다. 왼쪽이 이날 산행의 하이라이트 ‘쌍선봉’ 가는 길인데, 입산 통제 중인지 모두들 오른쪽 능선을 탔다.
쌍선봉(雙仙峰)을 불가에서는 묘적봉(妙寂峰)이라 부르는 것 같으며, 해발 459m로 변산 5번째 높이의 산이지만 변산반도의 중앙에 위치하여 내변산을 대표하는 봉우리처럼 보인다. 여기에 얽힌 전설도 전해진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청년시절 부안군 보안면 우반동 굴바위 옆 저수지 안쪽의 선계안(또는 성계골)에서 영험한 두 노인에게 각각 문(文)과 무(武)를 익혀 훌륭한 청년이 된 뒤 스승들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
스승과 제자 모두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선계안 북쪽 삼천 보 떨어진 이 곳에 이르러 이성계가 두 스승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일어나 보니 스승들은 간 곳 없고 그 자리에 높은 봉우리 2개만 우뚝 솟아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쌍선봉이다.
월명암으로 가는 능선길은 힘들지 않아 산책로처럼 편하기는 했지만 산행 같지 않은 느낌도 들었다. 11:56 월명암에 도착해 경내에서 5분여 동안 대웅전 관음전 범종각 등을 구경했다.
월명암(月明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로 691년 신라 신문왕 11년에 부설(浮雪) 거사가 창건하였는데, 묘화(妙花)와의 사랑에 얽힌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천년 고찰 내소사가 600m에 이르는 평균 수령 110년의 전나무 숲길로 더 유명하여 선남선녀의 산책길로 사랑받고 있다면, 월명암은 ‘월명무애’(月明霧靄)와 뒷산 낙조대에서 보는 '서해낙조'(西海落照) 등 변산8경의 2경으로 더 이름이 나 있다.
쌍선봉3거리에서 월명암을 지나고 관음봉이 바라다보이는 바위고개에 이르기까지 능선길 양쪽에는 ‘나무박물관’이라도 되는 듯 여러 종류의 교목/관목들이 팻말을 달고 빽빽이 서 있었다.
졸참나무 굴참나무 등 참나무 종류가 많았지만 까치박달 감나무 고로쇠나무 나도밤나무 노린재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서어나무 소태나무 쇠물푸레 잣나무 쪽동백 층층나무 팽나무 등등... 수종이 참으로 다양했다.
12:30 바위고개에 이르렀고 여기서부터는 경사진 가파른 하산길인데, 이때부터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봐주었으니 지금부턴 조심해서 내려가거라... 귓가를 스치는 것이 바람소리만이었을까...?
이슬비가 가랑비가 되고 또 부슬비로 변하는 속을 우의를 꺼내기 귀찮아 그대로 맞으며 조심조심 내려가 12:48 자연보호헌장탑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먼저 도착한 동문들이 간식을 먹고 있었다. 거기 끼어 우산을 받고 간식거리를 꺼냈다. 김밥, 떡, 송편 등등...
13:03 자연보호헌장탑을 떠나 나무다리를 건너고, 봉래구곡 옆길을 따라 내려갔다. 13:21 실상사를 지났으며 13:29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해 산행을 모두 마쳤다.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올라 보니 일행 모두 이미 탑승해 있었다. 이날도 맨 꽁지를 면치 못했다.
탐방지원센터를 떠난 버스가 14:14 부안읍 동중리로 이동해 ‘낭주식당’에서 비룡-잠룡 연합산행 뒤풀이 오찬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도 목포 잠룡팀에서 고향의 특산 먹거리를 잔뜩 가져와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홍어-돼지고기-김치 ‘삼합’(三合)과 ‘홍탁’(洪濁), 농어찜, 파김치 등등 먹고 또 먹고... 잠룡 동문들은 우리더러 밥은 아예 먹지 말고 홍탁삼합과 농어찜만 먹으라고 했다. 찜을 하는 농어는 매우 큰 댓자 농어인 듯 했으며, 그 맛이 일품이었다.
농어찜을 먹다가 정순배 회장에게서 ‘덕자’ 얘기를 들었다. ‘병어’ 큰 놈을 ‘덕자’라 하는데, 덕자도 찜을 해야 맛있다고 했다. 큰놈일수록 회로 먹어야 맛 있을 거라고 우겼는데, 얼마 전 진도 친구에게 물었더니 덕자는 회로 먹으면 맛이 없을 것이라 했다. 정회장 얘기가 맞는 것 같다. 덕자에 대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40cm 이상의 병어를 ‘덕자’라고 하는데, 이렇게 큰 병어를 처음 잡은 어부가 별다르게 부를 이름이 없어서 선주 딸의 이름을 따 ‘덕자’라 불렀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고 한다. 고문서에서는 ‘덕자’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근래 어부들의 입을 통해 만들어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술이 돌고 돌고... ‘위하여∼’를 몇 차례 외치고... 교가를 합창하고 뒤풀이를 끝내니 15:15. 낭주식당을 나오니 비는 그쳐 있었다.
비룡-잠룡 동문들이 주차장에 모여 작별 인사를 하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잘 가라고 악수를 나누고 또 나누고... 버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하며 버스에 올랐다. 잠룡의 버스가 먼저 떠나도록 하고 비룡이 환송을 한 다음 15:21 비룡도 부안읍을 떠나 귀경길에 올랐다. 잠룡과 비룡이 남북으로 헤어졌다.
16:19 부여백제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고 정안에서 국도로 나가 17:09 차령휴게소에 들린 뒤 다시 들어오고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해 서울로 올라온 듯 했다. 서울이 가까워오자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19:00 좀 넘어 서울에 도착했으나 강남터미널에 이르기까지 교통체증으로 시간이 꽤 걸렸다.
호남선 착발 문 앞에 내린 것이 19:40경이었을 것이다.
동문들과 함께 한 시간은 항상 즐겁다!
박선배님 수고 하셨습니다
항상 구수한 뒷풀이 해설과 멋있는 기록 사진이 산행의 멋을 더합니다
더 건강하시고 자주뵙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