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9일 아침 인천국제공항,
비룡산악회에서 재작년부터 기획 하였던
"유달에서 백두까지" 프로젝트가 드디어 장도에 올랐다.
연길 공항에 도착하니 조선족 안내원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려했던 바 와는 다르게 날씨가 맑아 기분이 한결 상쾌하다.
A조는 관광팀, B조는 6시간 트레킹팀, C조는 12시간 트레킹팀인데
조에 따라 일정이 다르기 때문에 조별로 차량에 분승하여 출발하였다.
내일 아침부터 백두산으로 출발 하기 위해 우리 B조는
바로 연길시내를 거쳐 이도백하로 출발하였다.
연길거리의 간판들이 모두 한글이 위에 표기되고
아래에 한자로 표기되어 있어 이곳이 한국땅이 아닌가 착각이 든다.
"연변"하면 어렵게 살아가는 조선족을 먼저 떠 올렸는데
거리의 모습들이 한국의 중소도시 못지않게 활기차다.
버스로 이동 중에도 33회 이영태 명창이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등 아리랑시리즈를 걸쭉하면서도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열창하여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3시간 반을 이동하는 중에 화장실을 들를 수 있는 유일한 휴게소가 하나 있었다.
푸세식 화장실에서 진한 암모니아 향기를 흠뻑 마시고
가이드의 안내로 뒷산에 장뇌삼 밭에 들러 몇 사람이 삼 한뿌리씩 사는 바람에
즉석에서 씻어 한조각씩 나누어 먹고 낼 산행 할 에너지를 충전하였다.
한뿌리 5만원 달라는 것을 깍아서 3만원에 샀지만
다음날 백두산 가보니 입구에서 한뿌리에 만원에 사라고 호객행위를 하고
심지어는 만원에 세개까지 팔기도 하여 첫날부터 호되게 신고식을 치룬 셈이다.
그런데 그 중에는 본드로 붙여서 파는 것도 발견 되었다.
버스에 내리니 커다란 출입문에 장백산이라고 씌여 있다.
관광객의 태반이 한국 사람들인데
입장권 수입은 중국 넘들이 다 챙긴다 생각하니웬지 좀 씁쓸하다.
지도를 보고 능숙하게 설명하는 것을 보니
정순배 회장님은 전에도 몇차례 와 보신 모양이다.
입장후 대형버스와 마이크로 셔틀버스를 번갈아 타고
등산로 초입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 했다.
구름이 끼어서 덥지 않아 산행하기는 안성맞춤이다.
코스의 3부도 못 온 것 같은데 14회 오동태 형님은 벌써 쌕쌕 거리며 힘들어 하셔 조금 걱정된다. 주변에 놀고 있던 개구리를 잡아 한컷 찍어 달라며 장난을 치는 후배!
소천지 입구에서 한컷!
여기 저기 피어 있는 이름 모를 들꽃들! 줄기와 꽃이 땅에 바짝 붙어 자라는 하얀 철쭉꽃!
중턱을 넘어서니 계곡과 응달 쪽에는 언제 부터 쌓인 눈인지는 모르지만 한여름인데에도 아직도 남아 있다. 한쪽은 낭떠러지에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초원과 군데군데 녹아 내리는 잔설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눈언덕에서 미끄럼을 타며 내려 오니 재작년 동창들과 제주도 한라산 등반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경사가 완만해 지고 우리가 목표한 용문봉이 잡힐듯이 가까이 보이는 걸 보니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 왔나 보다.
저 건너 천지가 내려다 보인다. 이 높은 봉우리에도 풍화되어 무너져 내리는 바위사면을 빼면 온갖 들풀과 꽃들이 카페트처럼 푹씬푹씬하게 깔려있다.
아쉽게 용문봉까지 가는 길이 금지 표지가 되어 있어 천지를 내려다 보며 자리를 잡았다. 매표소에서 중국인들이 왁자지껄하며 많이 북적거려 걱정 했는데 모두 지프차로 오르는 관광코스로 샛는지 등반코스에는 우리팀이 유일하여 더욱더 여유로운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언제 화산이 터질지 모른다는 소문에 겁을 먹고 못 온 사람도 몇명 있다는데 백번 왔다 두번 맑은 날 보기도 힘들다는 백두산은 오늘도 춘하추동의 날씨를 유감없이 선 보이며 묵묵히 말이 없다.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꿀맛같은 점심을 나눠 먹고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참 열심히 찍고있는데 쉴새 없이 주위를 맴돌던 구름이 급기야 소나기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하산하기가 너무 아쉬워 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더니 금새 다시 햇볕이 내려 쬐어 충분히 구경할 시간을 주었다. 천지 건너 멀리 북한땅 장군봉을 한없이 바라보다가 미련을 남기고 발걸음을 돌렸다. 정신없이 오르느라 보지 못했던 절경들이 하산 길에는 더 잘 보인다.
저 멀리 용트림하는 듯한 장백폭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뒤 쳐진 몇사람이 안보여 기다렸더니 오를 때부터 자꾸 쳐지시던 동태형님이 무릎이 아파 더이상 걷지 못해 급기야 중국인 가이드에 업혀 내려 오는 신세를 져야했다. 소천지로 내려가는 코스를 변경하여 최단코스인 장백폭포로 내려 가는데 경사는 가파르고 비에 젖은 산길은 미끄러웠다. 한시간 반 남짓 고생 끝에 수풀을 헤치고 눈 앞에 펼쳐지는 장관! 아! 장백폭포! 천지의 기운을 한순간에 다 토해 내는 것 같다. 아마 승천하는 비룡을 본 사람이 있다면 여기서 보았을거야!
우리 모두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비룡 화이팅!"을 외쳐 본다.
폭포 아래에서는 뜨거운 천연 온천수가 솟아 나고 여기에 계란과 옥수수를 삶아서 파는 중국인들! 계란이 10위안에 4개니 한개에 오백원 꼴. 다음날 용정으로 이동하는데 차창가로 멀리 일송정이 보인다. 시간이 여유가 있어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참외밭에 들러 설익은 개구리 참외 맛을 보았다. 혜란강은 오늘도 말없이 두만강을 향해 흘러 간다.
윤동주 시비가 있는 대성중학교 나중에 다섯개의 중학교가 합쳐져 용정 중학이 되었다고 한다.
기념관 안에 들어가니 카리스마 넘치는 동포안내원이 청산유수같이 해설을 곁들인다.
용정중학교 시절 사진인데 우측이 윤동주 시인이고 가운데가 문익환 목사님
윤동주시인의 성적표인데 얼핏 보니 유독 일본어만이 낙제점수인 4~50점대다. 백두산을 내려 와서 인지 점심 먹고도 일정이 여유롭다.
마지막 날이라고 단고기로 포식했다. 길쭉하게 보이는 것이 한마리에 하나 밖에 없다는 거시기!
이채로운 간판들! "큰귀토끼구이"
"뀀성"이 신기해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꼬치구이 전문점이라고 한다.
드디어 북녘땅이 손에 잡힐듯 건너다 보이는 도문의 두만강가! 4천원 정도 주고 대나무로 만든 돗대없는 대나무 땟목을 타고 건너편 강가까지 다가가 북녘강토를 한없이 바라보다 강가의 풀포기만 만지작거리다 돌아 왔다.
소시적에는 금수강산을 金水江山으로 쓰는 줄 알았는데 백두산을 구경한후 왜 비단으로 수놓은 듯하다는 錦繡江山으로 표현한 줄을 절감했다. 비록 내땅으로 가지 못하고 먼 중국땅을 거쳐 갔다 왔지만 웅장하면서도 고향의 뒷산처럼 정감이 가는 백두산 봉우리를 호시절이 찾아 오면 더 많은 동문들이랑 친구들이랑 가족들을 몽땅 동반하고 꼭 한번 더 가 보고 싶다.
실감있게 써준 기행문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