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use me?” 소년에서 한국 전자산업의 1세대 역군으로 - 글로벌 부품회사 ㈜삼진엘앤디 CEO 이경재 회장을 찾아서 1. 삼진엘앤디 창업 및 사업현황 ㈜삼진엘앤디 창업자 자리에 교사(校舍)가 있던 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이듬해 금성사에 입사했다. 입사 후 3년 동안 자석식 전화교환기 부품의 국산화 및 생산라인 설치 등 우리나라 초창기 전자산업의 1세대 역군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 디뎠다. 이후 1969년 경남 양산 70만 평 대지에 문을 연 삼성-NEC(현 SDI) 창립 멤버로 삼성과 인연을 맺고 허허벌판 뿐 이었던 곳에 진공관 및 흑백 브라운관 공장 건설을 시작으로 부품 국산화에 참여하였고, 칼라 브라운관 프로젝트 참여등을 통해 삼성그룹이 디스플레이 사업에 성공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만든 계기와 한국 전자산업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 중 “흑백 TV 브라운관 전자총” 국산화는 당시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최첨단 기술이었고 대한민국 전자공업 역사에 크게 남을 큰 족적을 남겼다. 삼성NEC에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1977년 삼성그룹의 신설회사였던 삼성정밀(현 삼성테크윈)에 사원 1호로 발탁되어 자리를 옮기게 된 이경재회장은 다연장 로켓 추진기관 개발 및 양산, 한국형 미사일 추진기관 개발 등 첨단병기 기술개발의 주역으로 국군 무기 현대화에 크게 기여하였고, 일본 미놀타사의 카메라 기술을 도입 카메라 국산화에도 참여 한 바 있으며, 당시 삼성정밀의 Tape deck mechanism 사업이 삼성전기로 이관되면서 사업과 함께 자리를 이동 전해콘덴서 개발 등 전자부품 국산화의 주역으로 다시 한번 큰 발자취를 남기는 것으로 삼성그룹에서의 생활을 마감한 이회장은 부품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스스로 창업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부품 국산화를 통한 기술자립으로 국가에 기여하자는 목표로 1987년 1월 6일 설립한 ㈜삼진기연은 창업과 함께 일본의 사출기와 금형을 도입하여 Video Deck에 장착되는 Loading Gear등 정밀사출부품으로 영업을 개시하면서 금형,부품의 국산화 개발에 매진 일본시장에서 인정받는 초정밀 사출부품을 본격 수출함으로써 기술자립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일본 시장에 부품을 수출하면 세계 어디에든 수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삼진기연을 키워 갔으며, LCD 시대가 막 시작 되었던 1999년 TFT-LCD의 핵심 부품인 Mold Frame의 국산화에 성공 LCD부품사업에 본격 진출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맞았다. 이후 TFT-LCD의 LGP(도광판) 독자개발 및 양산, LCD의 광원부품인 백라이트 유닛(BLU)를 개발 및 양산 등 지속적인 기술개발 노력의 성과로 삼성전자LCD부문 협력회사로서 실력을 인정받게 되면서 지속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2004년에는 LCD TV용 Mold Frame 개발,양산으로 LCD관련 전 분야의 부품을 공급하는 메이저 협력회사로 발전하는 전기를 맞았으며 2006년 TV용 Cabinet 생산을 위해 멕시코에 진출함으로써 글로벌 디스플레이 부품회사로 탈바꿈 했다. 올해로 창립 24주년을 맞는 삼진엘앤디는 회사의 중장기 지속성장을 위해서 21세기 새로운 빛으로 떠오르는 차세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사업과 디지 털 컨버전스 제품인 미디어 디바이스 사업진출 등 사업 다각화 및 세계화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삼진엘앤디는 현재 경기도 화성에 본사를 중심으로 진천공장, 의왕 연구소, 성 남 연구소 등 국내 2공장 2연구소와 해외 4개 법인(중국 동관, 소주,멕시코,슬 로바키아)에 진출하여 글로벌 부품회사로 성장하고 있으며, 2010년 기준 년 매출 3,000억 원, 종업원 4000명을 고용하는 한국의 대표적 중견기업으로 성 장해가고 있다. 2. 부품 사업을 하게 된 인연 ㈜삼진엘앤디 당시 기관장이 선물한 “Life”지(誌)등은 영어 실력 향상의 도화선이 되었고 서로간 펜팔을 하면서 쌓은 실력과 대학 및 초창기 외국 기술을 들어와야 하는 국내 현실에서 외국어의 필요성이 더욱 느껴 지금은 영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등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글로벌 CEO가 되었다. 그러한 배경에는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끝없는 호기심과 탐구심, 바다를 배경으로 태어나 커오면서 얻은 커다란 담력 및 열정이 큰 몫을 했으나 최초 외국인에게 “Excuse me”라고 용기 있게 말을 건 사건이 현재의 인연의 단추가 되었다. 3. 품질 경영을 경영의 주축으로 ㈜삼진엘앤디 하는 등 품질경영의 실천자로 정평이 나있다. 이처럼 품질에 역점을 두는 것은 일본에서 연수 중 부품은 품질이 최고덕목이라는 일본인들의 경영철학을 몸소 배웠고, 부품 사업을 하면서 완제품이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부품이 최고의 품질을 가지고 있어야 명품이 나온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품질의 중요성을 더욱 몸소 실천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고 품격 부품이 되지 못하면 살아 남을 수 없어서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4. 한미 간 교류 증진을 위해 ㈜삼진엘앤디 회장이라는 공식직함을 떠나서 “주한미군 좋은 친구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세계 속에서 미국의 역할 중 한국과 미국의 우호증진을 위해서 국내 주둔 미군에게 한국문화를 이해시키고, 한국을 이해하도록 한국음식, 한국 장례문화, 결혼 등 한국을 알리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군 모범장병에게 스키투어 경험을 하게하고 미국 부모님을 초청하여 한국관광 및 연말파티를 지원하는 등 한미 우호증진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이러한 공로로 미8군 사령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등 다양한 사회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 시절을 생각해 보면 많은 생각이 앞서지만 “Excuse me”하면서 당돌하게 외국인에게 접근하여 하고자 하는 일을 시도했던 용기와 끝없는 호기심, 시작하면 꼭 최고가 되어야겠다는 열정이 지금의 ㈜삼진엘앤디를 만든 것 같다. 지금까지는 동문회에 많은 활동을 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자라나는 후배들이 꿈을 갖고 도전하게 만들고, 나이 들었다고 좌절하지 않는 진정한 비룡인이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동문회에 이바지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