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기 산 행 안 내 ▲△▲
<< 2014년 12월 27일 토요일 >>
[ 자주 걷고, 많이 걷고, 즐겁게 걷자!! ]
제80차 비룡산악회 정기산행은 송년산행으로
옛부터 서울을 지키는 외사산 중 하나인
"아차 용마산"에서 진행합니다.
아차 용마산(峨嵯山 285m, 龍馬山 348m)은
서울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먼 과거엔 동쪽에 길게 일자로 늘어진 언덕같다고 해서
아단(阿旦 해가 뜨는 언덕) 이라고 하다가
'아차(阿且 조금 높은 산)', 다시 아차(阿嵯 - 峨嵯)로 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눈에 보이는 풍경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산!
고대사의 보고인 아차산!
회색도시의 골목을 지나 천년의 언덕을
선후배님들과 산책하듯 걸어봅니다.
초대합니다!!
▲ 용마산 정상석
☞ 산 행 지: 아차 용마산
☞ 산행일시: 2014. 12. 27.(토) 오전 10:30.
☞ 만나는곳: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2번 출구 안
☞ 산행코스: 아차산역 2번출구-> 아차산 만남의 광장->낙타고개 ->아차산 정상
->용마산 정상 ->사가정역
☞ 산행시간: 약 4시간 내외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 2번출구 밖으로 나와 우측으로 50m에 있는
최가네돌솥부대찌개(02-438-3800).
※ 준 비 물: 아이젠, 보온방풍의, 간단한 점심, 간식, 따뜻한 물 등
※ 산행안내자 연락처 총대장 윤익상(고19) 010-5212-9485
대장 장명균(고21) 010-6441-7437
대장 박상복(고26) 010-5328-4600
대장 황근수(고29) 010-5267-4159
★ 본 산행은 눈와도 진행합니다.
★ 등산지도 필요하신 분, 첨부파일에 있습니다.
* 필요한 기본장비는 철저히 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약속시간은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 서로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산행이었으면 합니다.
* 사소한 부주의가 사고로 이어지니 안전산행이 될 수 있도록 협조바랍니다.
* 산행코스와 산행시간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재경 목포중*고 총동문회
비 룡 산 악 회
회 장 정 순 배
Tip << 아차산의 유래 >>
아차산 기슭에 사는 사람들은 아차산을 아끼산, 액끼산, 에께산, 액계산, 액개산 등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경기지〉에는 ‘지금의 영화사인 화양사는 악계산(嶽溪山)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즉, 아차산을 악계산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악계산의 ‘계(溪)’가 들어간 인근 지명으로 청계산, 청계천, 상계동, 퇴계원 등이 있다.
‘계’는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곰 부족(濊)’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 바위로 이루어진 험한 산에 악(嶽)이 붙으니, 악계산은 ‘험한 곰 부족의 산’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 설명하면,
〈대동여지도〉에는 지금의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이 모두 아차산으로 표기돼 있다.
중랑구 상봉동에 있는 봉화산도 아차산 봉수대라고 하였으므로 이곳까지도 아차산이었다.
하나의 아차산으로 불리던 산이 봉우리마다 이름을 갖게 된 연유는 대략 이렇다.
망우산은 우암 송시열이 〈송자대전〉에서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더불어 지금의 건원릉에 와서 죽고 묻힐 자리를 정하였다.
그리하여 근심을 잊었으므로 여기서 서쪽의 아차산 능선을 가리켜 망우리(忘憂里)라고 이름지었다.
이후 태조 이성계가 〈망우동지〉에서 “검암산(지금 동구능)에 자기가 죽어서 묻힐 터 자리를 잡고, 아차산 북쪽 산마루에 이르러 이제 근심을 덜었노라”라고 했다.
사실, 건원능(이성계의 무덤)은 이방원(太宗)의 수하인 하륜이 이성계가 죽고 난 다음에 검암산에 있는 절(寺)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고 조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과 더불어 한양 사람들의 묘지가 이곳에 들어서면서 망우산의 이름은 굳어졌다.
용마산에는 아기장수의 전설이 있다.
아기장수의 전설에서 ‘날개 달린 말(龍馬)’이 있었다는 이야기와 〈삼국사기〉 지리지에 아차성과 더불어 용마산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비롯해 용마산이 아차산에서 갈라져 나간 것이다.
한편, 아차산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흔히들 알고 있는 이야기가 조선시대 명종 때 홍계관의 이야기다.
왕은 “마루 밑으로 지나간 쥐가 몇 마리냐”고 홍계관을 시험해보았고, 홍계관은 “세 마리”라고 답했다. 그러나 왕이 마루 밑에서 본 쥐는 한 마리였다. 왕은 홍계관에게 사형을 내렸다.
그러나 쥐의 배를 갈라보니 배 속에 새끼 두 마리를 배고 있었다. 왕은 곧 사람을 보냈다.
승지가 말을 타고 달려가 당마루 위에 올라가서 처형을 중지할 것을 알렸으나, 형관은 처형을 속히 집행하라는 뜻으로 알고 홍계관을 처형했다. 왕은 그 사실을 듣고 ‘아차’하며 애석해했다.
그래서 그 고개를 아차고개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아차고개가 있는 산은 아차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홍계관 이야기는 민담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 신빙성이 떨어진다.
삼국시대의 〈삼국사기〉에서는 아차성(阿且城) 또는 아단성(阿旦城)으로 혼용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저술한 〈고려사〉에서부터 지금의 아차산(峨嵯山)으로 표기한다.
조선시대는 중국을 숭상하였던 유교에 근본을 두었다.
그래서 오랑캐의 개념인 아(阿)를 꺼렸다. 따라서 我(아)라고 썼다.
산에 관계된 지명이므로 山(산)변을 덧붙여서 峨(아)라고 한 것이다.
또한 且(차) 역시 태조 이성계의 이름인 旦(단)과 혼동할 소지가 있으므로 差(차)로 하여 확실하게 구별했다.
마찬가지로 산에 관계된 지명이므로 山(산)변을 첨가하여 嵯(차)라고 한 것이다.
송년산행에 많이 참석해서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마무리 하고
활기차게 신년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