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한장 남은 달력도 한줄 한줄 지워져 갑니다.
먼 옛날 달력 구하기도 힘들 때 동네 이장이 갖다 준 한 장짜리 달력이 생각 납니다.
그 놈을 밥풀로 발라서 벼란박에다 붙여 놓고 1년을 쳐다보면 색깔이 바래서 이 때 쯤이면 글씨가 보이지 않았지요.
여름 철 장마에 젖고, 파리가 똥을 쏴 놔서 더덕더덕 붙어있는 데다가 농사 일정을 연필 글씨로 빽빽히 적어 놓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떤 집은 자식 농사를 잘 지어서 서울에서 보내 준 두툼한 달력들로 온 방을 도배를 해 놓고 동네사람 모아놓고 자식자랑을 하는 집도
있었죠. 우리집도 이 때 쯤이면 친척들이 보내 준 두툼한 달력들로 온 방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들의 삶이 풍요로워서 인지 그런 아름다운 풍속들이 없어져버려 아쉽습니다.
방학 때 시골 집에 가면 사랑방에선 입담좋은 동네 머슴들의 옛날 얘기를 듣곤 했는데, 겨울 추억 중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밤이 새도록 귀신 얘기를 듣고 나면 꿈자리가 사나워서 밖에 있는 화장실도 못 갔죠.
또한, 동네 처녀들의 데이트 신청을 받고도 밤길이 무서워서 나가지도 못했던 기억들이 생각 납니다.
어쩌다가 친구들과 밤길을 갈 땐 항상 가운데 끼워서 가야 했고, 앞에 사람 옷 가랭이를 잡고 다녔죠.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리 겁이 많았는지 웃음이 절로 납니다.
사랑하는 동문들이여,
학창시절 아름다운 추억들을 가지고 열려있는 동문회 홈페이지 대화의 장에서 만납시다.
이렇게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 대화가 그립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어느 면을 보아도 숨 쉴 공간이 없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다 남북 문제는 꽁꽁 얼어붙어 있어 10년 전 IMF 때 보다 더 어려운 현실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 동문들끼리라도 따스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추운 겨울을 따스하게 보냈으면 합니다.
세상 인심은 이런 것 같습니다.
착하면 손해보고 참으면 바보 취급당하고, 강한자가 살아남고, 이긴 자가 독식하는 정글의 법칙만이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정해년 한 해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새해엔 더욱더 새로워 지고 발전하는 동문회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리고 연말 연시를 미향 목포에 내려가서 목포 먹갈치에다 보길도 전복에다 무안 세발 뻘낙지에다 보해소주 한잔
얼큰하게 합시다.
끝으로 눈 오는 날 진한 커피한잔 생각 나시면 충정로 동문회관으로 오세요.
제가 헤즐넛 커피향이 풍기는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겠습니다.
재경 동문 19회 이 수찬 올림
동문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