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23일 비룡산악회 58차 삼성산 산행에 참가하고 이날의 기록 영상을 정리했다. 산행 일정 시종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설영형 동문과 문웅비 총무의 카메라에 잡힌 영상도 함께 끼워 넣었다. 양해를 구하며, 귀중한 영상 제공해 주심에 깊은 감사드린다.
이번 삼성산 산행코스는 관악역→학우봉능선→제2전망대→학우봉→삼막사→깃대봉→제2광장→관악산정문(서울대입구)으로 잡혔으며, 추정 산행시간은 4시간 정도로 예상되었다.
‘삼성산’(三聖山)은 서울/관악구/신림동과 경기도/안양시/석수동에 걸쳐 있는 해발 높이 481m의 산으로, 629m의 ‘관악산’(冠岳山)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에서 우뚝 솟아 오른 바위로 된 암산이며, 도림천을 기준으로 서쪽은 삼성산, 동쪽은 관악산이다.
<동국여지승람> ‘금천현 산천조’에 “삼성산은 현 동쪽 10리 지점에 있는데 진산이다”라고 했고, ‘과천현 산천조’에는 “관악산은 현 서쪽 5리 지점에 있는데 진산이다”라고 했으므로, ‘삼성산’은 금천현의 관아가 있던 지금의 서울/금천구/시흥2동에서 동쪽으로 10리 지점에 있는 금천현의 진산(鎭山)이며, 과천현의 진산인 ‘관악산’과는 별개의 산임을 밝히고 있다.
08:05 수유동 집을 나와 수유역에서 지하철 4호선에 탑승,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해 관악역에 내리니 09:20경이었다. 서울의 새벽 기온이 -4.4°C로 근래의 강추위에 비하면 별로 추운 날씨가 아니었는데도 관악역사 안에 마땅히 쉴 곳이 없어 서성거리며 기다리자니 꽤나 추위가 느껴졌다.
한참 뒤 2번 출구 밖으로 나가니 맑은 날씨에 햇볕도 들고 바람도 없어 오히려 따뜻했다. 정순배 비룡회장을 비롯해 윤익상 총대장, 장명균/박상복 대장이 나왔고, 문웅비 총무는 인원 점검하느라 바빴다. 설영형 동문이 안보여 걱정했는데 좀 늦게 도착해 일행과 합류했다.
10회 위쪽의 나이든 동문은 4회 본인과 5회 김상열/조길현, 10회 이수상 등 네 사람 뿐이었다.
비룡 동문 일행 23명은 10:17 관악역을 출발하여, 경수대로를 건넌 다음 10:23 산길에 접어들면서 학우봉능선을 향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삼성산 자락에는 삼막사를 비롯하여 염불사, 망월암, 안양사, 성주암(서울), 삼성사 등의 사찰이 있고, 임진왜란 때 병조판서를 5번이나 역임하고 후에 영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1556∼1618)이 생전에 이 산에 올라 읊은 ‘차유삼성산운’(次游三聖山韻)이란 장시가 있으며, 일제 강점기 고백록(高百祿)의 시조가 전해진다.
또 왕건이 금주, 과주 등의 고을을 정벌하기 위하여 AD 900년 이 곳을 지나가다 능정이란 스님을 만나 ‘안양사’(安養寺)를 지어 오늘날의 안양시(安養市) 이름이 탄생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볼거리로는 삼막사, 안양사, 불성사 등 사찰과 관악수목원, 그리고 안양 2경인 삼막사 남녀근석과 안양 6경인 예술공원도 있으며, 등산로 기점으로는 서울에서는 관악구 서울대입구 시계탑광장, 안양 쪽에서는 안양예술공원, 관악수목원 입구, 염불사 입구, 관악역 등이 있다.
10:49 금강사 갈림길을 지났다. 그 동안 내렸던 눈은 다 녹아 등산로는 흙길 바위길이었다. 생각과는 달라 처음엔 싱거운 생각도 들었으나 위로 올라갈수록 주변에 쌓인 눈이 많아지고 능선길에도 흙 섞인 얼음판이 깔려 있어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학우봉능선길을 따라 올라가니 점차 시야가 넓어지면서 주변 산봉우리들이 나무들 사이로 시야에 들어왔다. 능선길에서 두 번 정도 쉬었다.
능선길에서 데크쉼터와 제2전망대가 있는 341m 암봉이 보였다. 바위길을 올라가 데크쉼터에 선 것이 11:12! 멀리 안양 시가도 보이고, 눈 덮인 산등성이와 산자락 등 원경이 아름다웠다. 자연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인간세상을 생각하며 산행의 쾌감을 맛보기도 했다.
바위길을 올라 또 하나의 데크쉼터에서 쉰 후, 철구조물에 난간을 세우고 나무발판을 얹은 경사진 계단을 올라가 11:23 제2전망대 표지판 앞에 섰다. 능선길은 빙판이 많아졌다. 여기서 일행은 모두 등산화에 아이젠을 맸다.
능선길에서는 왼쪽에 368m의 학우봉과 오른쪽에 481m의 삼성산이 보였다. 안양시의 ‘삼림욕장 안내도’ 팻말에는 삼성산이 ‘국기봉 477m’로 표시되어 있었다.
삼성산의 주봉 이름이 ‘국기봉’인 듯한데... 446m ‘깃대봉’을 ‘국기봉’으로 표시한 자료도 발견되니 확신을 가질 수 없으며, 또 해발 높이는 대부분의 자료에 481m로 나와 있으므로 안내도의 477m는 그 근거가 무엇인지 의아스러웠다.
‘산’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가 ‘위치’와 ‘높이’인데도 불구하고, 안양시의 홈피 ‘문화관광’ 자료에는 해발 높이조차 기재되어 있지 않아 실망스럽다. 어쨌거나 여기서는 삼성산의 정상 주봉이 481m의 ‘국기봉’임을 전제로 기록하고 있다.
11:38 학우봉 우회로를 지나고 11:57 ‘삼막고개’ 4거리에 이르러 ‘국기봉’ 방향으로 계단을 올라 삼성산 정상을 향했다.
삼성산 이름의 유래에는 3가지 정도의 설이 전해온다.
원효-의상-윤필 세 고승이 677년 신라 문무왕 17년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정진하였던 곳이 ‘삼막사’(三幕寺)의 기원인데, 이 세 고승을 3성(三聖)이라 높여 ‘삼성산’(三聖山)이라 칭했다는 설이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일부 사사(寺史)에만 그 기록이 전해지고 있을 뿐 이를 뒷받침할 사료(史料)는 발견되지 않는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극락세계의 아미타불과 그 좌우의 관세음보살 및 대세지보살을 삼성(三聖)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산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나, 이를 입증할 문헌은 전혀 없다.
마지막으로 고려말기 불교계를 이끌던 나옹(1320∼1376), 무학(1327∼1405)과 인도승려 지공(?∼1363)이 이곳 산에 올라가 각기 수도할 자리를 잡고 정진했다는 연고로 ‘삼성산’이라 했다는 설인데, 조선 후기에 간행된 <시흥읍지>, <시흥현읍지>, <시흥군읍지>에 실려 있어 가장 믿을만한 정설로 인정된다는 것이 안양시청 문화관광 자료에서 확인된다.
12:05 경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삼막사로 내려가는 갈림길 3거리에 당도했는데, 정상을 코 앞에 두고 발길을 왼쪽으로 돌려 삼막사로 내려가는 하산길을 택했다.
일행 주류로부터 뒤쳐진 데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도 만만찮을 것 같아 삼성산 정상을 밟을 기회를 포기한 것인데, 나중에 정상에 오른 동문들 사진을 보면서 후회 막급이었다. 정상 바위에는 눈 내린 흔적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하산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길가에 매달린 ‘부처님 오신날’ 연등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12:17 건설한지 오래지 않은 듯 보이는 돌계단을 만났다. 삼막사의 ‘칠성각’으로 오르는 길을 만난 것이었다.
돌계단을 따라 조금 올라가보니 ‘칠보전’이란 현판이 붙은 2중 지붕을 한 칠성각이 절벽 위에 있었다. 문이 잠겨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고, 입구 절벽에 ‘삼막사 남녀근석’의 자연석이 눈길을 끌었다.
이 남녀근석은 2개의 자연 암석으로, 그 모양이 남녀의 성기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677년 삼막사가 건립되기 전부터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되었다고 하며, 경기도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바위를 만지면 순조로운 출산, 가문의 번영, 무병장수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4월 초파일과 7월 칠석 등 명절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 곳에서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칠성각을 뒤로 하고 연등이 늘어선 급경사의 돌계단 길을 걸어 삼막사로 내려갔다. 본당 경내 위쪽 나무 사이로 ‘월암당’(月菴堂)이 보였다.
12:30 삼막사 본당 경내 입구에 도착해 간식을 준비하는 일행을 만났다.
삼막사(三幕寺)는 경기/안양시/석수동 삼성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사지(寺誌)에 의하면 677년 신라 문무왕 17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중건하고 ‘관음사’(觀音寺)라 부르다가 고려시대에 왕건이 중수한 후 ‘삼막사’라고 개칭했다고 한다.
1394년 조선 태조 3년에 무학왕사(無學王師)가 머물면서 국운의 융성을 기원한 것으로 인해 1398년 태조의 왕명으로 중건하였으며, 그 뒤에도 몇 차례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고, 1880년 고종 17년에는 의민(義旻)이 명부전을 짓고 이듬해에 칠성각 등을 완공했다.
우선 경내의 당우(堂宇)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천불전’(千佛殿), ‘육관음전’(六觀音殿), ‘명왕전’(冥王殿), ‘삼성당’(三聖堂), ‘망해루’(望海樓), ‘범종루’(梵鍾樓) 등... ‘칠보전’(七寶殿)과 ‘월암당’(月菴堂)은 먼저 보았고...
삼막사의 당우 이름은 좀 특이하다. ‘천불전’은 대웅전이고, ‘칠보전’은 칠성각이다.
‘삼막사’라는 절 이름은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의상(義湘)-윤필(尹弼)이 암자를 짓고 수도를 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전해오며, 조선시대부터 남왈삼막(南曰三幕)이라 하여, 남서울의 수찰(首刹)로서 서울 주변 4대 명찰의 하나로 꼽혔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 명부전, 망해루, 대방(大房), 칠성각, 요사채 등이 있고, 중요문화재로는 마애삼존불상(도 유형문화재 제94호), 동종, 3층석탑, 거북이 모양의 석조(石槽) 등이 있다.
간식을 들고 있는 동문들 틈에 끼어 떡, 고구마 등도 먹고 독한 술도 얻어마셨다.
커피를 한 잔 타 마시고 나서 13:04 삼막사를 출발해 눈길을 조심조심 걸어 내려가 14:30 서울대 입구 시계탑광장에 도착했다.
14:30부터 시계탑광장 건물 2층 ‘관악산회관’에서 산행 뒤풀이 시간을 가졌다. 막걸리/맥주/소주를 마시며 무사히 마친 삼성산 산행을 자축하고 ‘갈비곰탕’ 오찬을 즐겼다.
1차 뒤풀이가 끝나고 15:15부터 같은 층 ‘호프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19회 김문오/윤익상 동문과 36회 문웅비 동문의 생일 축하 생맥주 파티도 가졌다.
어떻게 세 사람의 생일이 겹칠 수 있나 의심스러운 점도 있었지만... 어쨌던, 시원한 맥주 맛이 달콤하기까지 했다. 소주를 타 마시는 장군깜 동문들도 많았다.
16:30 경 호프광장 맥주집을 나서 귀가길에 올랐다.
비룡 동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항상 즐겁다!
박선배님, 항상 이렿게 좋은 후기 남겨 주시니 고맙습니다
언제까지나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하시기를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