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리사 전광출
“혹시, 이 발명, 누구에게 보여준 적이 있습니까.” 필자가 특허출원 상담을 할 때 반드시 발명자에게 물어보는 말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지만, 특허출원 전에 발명을 공개해 버리면 중요한 특허요건인 신규성을 상실하고 만다. 물론, 특허청 심사는 통과하여 특허를 받을 수도 있다. 심사관이 그런 공개사실까지는 조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특허는 무효사유를 안고 있어서 특허공격을 받은 상대방이 공개사실을 들추어내는 순간 속절없이 권리는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발명이 미리 공개되는 일은 의외로 많다. 발명이 학술발표대회 발표문집에 실릴 수 있고, 전시회에 출품될 수도 있다. 발명대회와 같이 출품 후 입상을 한 뒤에 출원을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내 발명을 내가 공개했는데 괜찮겠지 하고 제품을 시판해 버린 경우도 있다. 기발하다고 생각되긴 하는데 특허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 모든 행위가 특허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만일, 특허출원 전에 발명을 공개했다면 구제절차는 없을까. 있다. 공개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출원을 하면서 구제신청을 하고 필요한 서류를 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6개월이다. 누군가 발명자 몰래 기술을 빼내 공개했더라도 6개월 안에 출원해야 한다. 물론, 이 경우 구제 주장은 나중에 이 사실이 무효사유로 주장될 때 하게 된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출원은 영영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특허무효 분쟁에서 위에서 든 공개행위가 쟁점이 되면 법원은 어떤 기준으로 공개인지 여부를 판단할까. 한마디로 말하면 “비밀유지 의무가 <없는> 사람이 출원 전에 특허발명의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를 따지게 된다.
특허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발명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비밀유지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든지, 그 때 발명의 핵심 구성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특허를 지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납품처에 제출한 서류에 발명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납품받은 회사는 상도의상 비밀유지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발명을 공개할 수밖에 없다면 반드시 비밀유지서약서를 받아 두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사례가 있었다. 여자 속옷을 발명한 발명자가 그 옷을 여자 친구에게 선물한 사실이 공개행위인지가 쟁점이 되었다. 그런데 공개행위로 인정되어 특허가 무효되고 말았다. 발명자가 선물할 때 특별히 비밀로 해달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법이 왜 이렇게 발명자에게 가혹할까’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허는 발명한 대가로 주는 것인데 발명자가 구제기간을 조금 넘겼다고 무효로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항변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법은 창작물은 빨리 공개되어야 산업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너무 늦게 공개하면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주제에 중복 투자하게 되어 국가적으로 낭비가 된다는 것이다.
디자인이나 실용신안 등록도 특허의 경우와 동일하다. 그러나 상표등록은 신규성이 등록 조건이 아니므로 무효사유는 아니다. 그렇다고, 출원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먼저 출원해 버리면 큰일이다.
자기의 상표를 찾는 데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라는 희생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마나 찾으면 다행이지만 찾지 못한다면 상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동안 광고에 들어간 비용에다 제품에서 상표를 제거하는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엄청난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끝> [매경이코노미 2009.09.09.자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