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色卽是空)

조회 수 2153 추천 수 0 2009.02.26 16:27:02
.
색즉시공(色卽是空)


보라 분홍 온갖 교태(嬌態)로 아름다움을 뽐내던
예쁜‘꽃’들도



해 지고 밤(夜)이 되면
모두가 어둠 속에 묻혀 같은 색깔(同色)이 되고;


천하제일(天下第一) 권세가(權勢家)와
부호(富豪)라는 사람들도,
생전(生前)의 영웅호걸(英雄豪傑)
경국지색(傾國之色) 절세미인(絶世美人)도
이승의 울타리 넘어서면 백골(白骨)된다네.

있음을 자랑하고 높음을 뽐내며
무너지고 사라질 물사(物事)에 목을 매고
단풍(丹楓)놀이 영원(永遠)할 듯 기뻐 웃는
어리석은 사람들아!

엄동설한(嚴冬雪寒) 매서운 바람
이제 곧 닥쳐오리니,
소리 없이 흐르는 세월(歲月) 앞에
금석(金石)인들 온전할까?
보시게.
그 많은 사람들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희희낙락(喜喜樂樂) 쳐다보던 ‘한가위’ 둥근 달도
이제 겨우 며칠 지났다고
벌써 이렇게 찌그러졌는데.......

살아서는 남들의 질시(嫉視)와 손가락질 받기 쉽고
죽어서는 후세인(後世人)들에게 욕(辱) 듣기 쉬운
속세(俗世)의 지위(地位)와 부(富)가 얼마나 가겠는가?

그러니......
높은 자리 물러나서도 손가락질 아니 받고
빈한(貧寒)해져서도 천대(賤待)받지 않고
죽은 뒤 욕(辱)먹지 않으려거든,
높을수록 너그럽고
있을수록 겸허(謙虛)해야 하는 법(法)이라네.


-우물 속의 달(詠井中月)

산승탐월색(山僧貪月色)/산속의 스님이 달빛에 반하여
병급일호중(竝汲一壺中)/호리병에 물과 함께 담았지만
도사방응각(到寺方應覺)/절에 도착하면 곧 깨닫게 되리
병경월적공(甁傾月赤空)/병 기울여도 달이 없다는 것을



*색즉시공이란?

고려 시대 때의 문신 이규보(李奎報)의 詩 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웅시인 '동명왕편'을 지은 그는
무인정권 시절 당대의 명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이 시를 통해볼 때 이규보는 가히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물에 달이 빠져 있는데,
산속에 사는 스님은 그 달을 호리병으로 길러 올립니다.
절에 가져와 물을 쏟아보니 달은 그 자취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해석하면 당연한 이치인데,
그러나 이 시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철학이 들어 있습니다.
즉 시인은 불교의 '색즉시공(色卽是空)'을 이 짧은 시를 통해
명쾌하게 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1구의 마지막 글자인 '색(色)'과 4구의 마직막 글자인
'공(空)'이 합일을 이루면서, 이 시는 절묘하게
'색즉시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물 속에 비친 달빛은 '색'인데, 그것을 호리병 속에
담아다 절에 와서 쏟아보니 어느새 그 존재는 달아나고
'공'만 남아 있습니다.
즉 형상이란 우물 속의 달빛처럼 달이 지고 나면 곧 사라지므로
공허하기 짝이 없는 일시적인 모습일 뿐입니다.

인생 또한 색인데, 그 형상도 죽고 나면 공으로 돌아가
형체가 없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부질 없는 인생살이가 이 시편 속에 녹아 있습니다.

옮긴 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홈페이지에 사진 및 관련 파일 올리는 순서 [2] 총무이사 2015-06-29 2045
1045 손철진(고 15회) 장남 결혼식을 알려 드립니다. file 수암 2010-09-24 3036
1044 용아장성릉 축소판 감탄사가 절로 / 군위 아미산(737.3m)~방가산(755.8m) 펑키 2010-10-03 3033
1043 강성종(고6)회장의 기쁜 가족 소식을 전합니다 file 행정이사 2011-07-03 3031
1042 예쁜여인이 누워있는 형상의산 / 화천 두류산(993) 펑키 2010-08-01 3030
1041 광고글입니다.(내용 흐뭇) file 윤건 2009-11-23 3027
1040 모종화(고25)장군 중장 진급!!!!!!!!!!!!!!!!!!!! file [1] 임삼용 2012-04-30 3026
1039 고향노래 15곡 김종칠 2008-09-13 3021
1038 한정록(閑情錄)-허준 설영형 2008-08-29 3017
1037 고민되네요.... 김청식 2007-11-22 3016
1036 암벽타는 재미가 솔솔한 찌를 듯 솟아오른 칼날연봉/ 함양 오봉산(879m) 펑키 2011-12-11 3012
1035 박주진(목중17,고15회)동문의 차남 결혼식 안내 수암 2011-06-01 3008
1034 안형환(고31) 의원의 "우리가 몰랐던 개방의 역사"가 시판된답니다요 file [1] SM 2010-04-30 3007
1033 마술 김종칠 2007-09-28 3003
1032 오동동 타령/6회 김종칠 2007-09-30 2999
1031 쌍곡구곡을 품고있는 충북의소금강 괴산 큰군자산(948m) 펑키 2011-12-02 2998
1030 동양화를 펼쳐놓은 듯한 칼바위능선 / 동두천 소요산(587m) 펑키 2010-07-20 2997
1029 세계 각국의 현황 김종칠 2007-08-30 2997
1028 광주(廣州)8경중 6경인 무갑산(武甲山/578.1m) 펑키 2012-09-09 2996
1027 보해양조 임건우(고14)회장 막걸리 `순희` 출시 file [1] 행정이사 2011-03-31 2989
1026 유두철(목중17회) 차녀 현수양 결혼식 안내 수암 2010-11-04 2988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서소문로27(충정로3가, 충정리시온)202호 | 전화번호: 02-365-0516 | 팩스번호: 02-365-0140
개인정보보호책임자: 총무이사 설정원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