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란 상인이 자기의 상품에 붙인 자기만의 특유한 표시이다. 왜, 특유해야 할까. 상표의 기능 때문이다. 시장에 나가보면 동일한 상품이 많다. 소비자는 이들 상품을 상품마다 누가 만든 것인지 구별할 수 있으면 편리하다.
이를테면 지난번에 샀던 ‘비누’가 향도 좋고 느낌도 괜찮아 다시 살 때 그 상품에 표시된 특유한 구별표시를 보고 찾게 된다. 제조자나 판매상인도 자신의 상품에 특유한 표시를 해두면 광고도 할 수 있고 광고한 상품을 틀림없이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이처럼 상표는 소비자에게는 원하는 상품을 시간낭비 없이 쉽게 찾게 해주고, 상인에게는 자신의 상품을 표시하여 매출을 올려준다. 그러다가 소비자에게 좋게 알려지면 상표 자체가 재산이 된다. 바로 이런 기능이 상표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특유한 표시란 무엇일까. 상품이나 상품의 포장에는 수많은 용어와 갖가지 표시가 있다. 용어만 예를 들면 ‘비누’에 상품의 일반명칭인 ‘비누’라는 글씨, ‘장미꽃 향기’가 난다는 향 표시, ‘미용비누’라는 용도표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사용하면 더 좋다는 사용시기 표시, ‘알로에’와 같은 원료 표시 등등.
바로 이런 설명어 등과 구별되는 표시를 그 상품의 특유한 표시라 할 수 있다. 만약, 그 상품에 특유한 표시는 없고 설명 표시와 같은 용어만 씌여 있다면 어떻게 될까. 소비자는 그 상품을 찾는데 애를 먹게 될 것이다.
둘째로는 다른 사람의 상표와도 구별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상표와 비슷하다면 이런 상표 역시 소비자가 구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품과의 관계에서 특유성을 뜻하는 ‘식별성’과, 다른 사람의 상표와의 관계에서 구별성을 뜻하는 ‘유사성’은 상표법 전체의 그물망을 짜고 있는 핵심주제가 된다.
식별성과 유사성 문제는 상표등록심사에서 등장한다. 심사의 첫 단계는 앞서 말한 식별성인데, 이 단계에서는 출원된 용어나 표시를 특정인에게 독점시켜도 합당한지도 추가적으로 판단한다.
왜냐하면 ‘식별성’심사는 그 상품의 특성 등을 ‘직접 설명하는 표시’가 아니라면 ‘암시상표’라 하여 통과되는 개념이므로 식별성이 있더라도 독점이 부적합한 상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환경관련 상품’에 ‘GREEN'이라는 용어가 환경을 직감하게 하는 표시인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다수의 경쟁업자들이 환경관련 상품에 이 단어를 설명어로서 사용하고 있다면 독점이 부적합하게 된다. 독점을 허용하면 경쟁업자들이 그동안 자유롭게 사용해온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계인 유사성심사는 ‘식별성 심사’를 통과한 상표를 대상으로 한다. 그 상품이 유통되는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관련상품에 표시된 양 상표를 보고 누구의 상품인지를 헷갈리지 않고 구별할 수 있는지를 상품과 소비자의 특성 등 여러가지 사정 등을 종합하여 심사한다.
특허청에서는 상표의 겉모습, 호칭, 의미 가운데 어느 하나가 동일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본래 식별성 없는 상표와 그렇지 않은 상표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다. 그런데 정작 상인들은 “최고의 상표는 최고의 암시상표”라 는 말이 있듯이 ‘암시상표’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상표출원이 바로 이 경계에 몰려 등록되기도 하고 거절되기도 한다.
더구나 식별성이란 상품에 따라 다르고 사용하다 보면 생기기도 하며, 반대로 막강한 식별력도 방치하면 보통명칭이 되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상대적이며 유동적인 것이다.
이렇게 모호한 식별성 문제에 유사성 문제까지 한 데 얽히면 식별성없는 부분을 제외해야 하는지 전체로 보아야 하는지를 놓고 이사람 말을 들으면 이쪽이 옳고 저사람 말을 들으면 저쪽이 옳아 보여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무상 ‘식별성이 없다’거나 ‘타인의 선등록상표와 유사하다’는 거절이유가 가장 많은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그래서 상표 분쟁도 자주 발생한다.
“누구나 판단할 수 있다”고 믿기에 <매경이코노미 4월27일자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