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9년 9월6일 왕십리역 성동경찰서앞 07시30분
*산행코스 : 노루목-김삿갓주거터-어둔이계곡-마대산-전망바위-처녀봉
-선낙골-노루목
*소요시간 : 천지산악회 28명 5시간(점심시간포함)
김삿갓이 잠든 영월 와석골을 가기위해 아침일찍 전철을 타고 왕십리역에 도착 차에 오르니 처음 참석하는 산악회라 낮설기만하다. 회장이 처음 참석한 두사람을 인사시킨후 아침대신으로 오뎅국물에 김밥을 나누어준후 커피까지 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차가 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리니 들넠은 누렇게 익어가고있는 벼이삭이 황금벌판을 만들어놓고, 파아란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멋있게 수를 놓으면서 드높게만 느껴지니 가을의 문턱이 성큼 닥아왔음을 실감케한다.
박달령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기위해 잠시 차에서 내리니 풍차가 시원스럽게 돌고있는 분수대에 행운의 동전던지기 통을 만들어놓고 내방객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고 그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위해 쓴다니 흐뭇하기 그지없다.
“시와별. 동강이 흐르는 영월‘에 도착하니 김삿갓축제를 알리는 프랑카드가 길거리에 걸려있고 오늘의 산행들머리인 노루목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10:55) 이곳이 김삿갓 유적지임을 알리기라도 하듯 길거리에 늘어선 장사꾼들의 좌판에서 삿갓을 팔고있는것이 유난히 눈에 띈다.
마대산은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김삿갓계곡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두대간이 선달산을 거쳐 고치령과 마항치 사이에 형제봉을 일으키고, 북쪽으로 가지를 쳐 옥동천과 남한강에 가로막혀 지맥을 다한 산으로, 동쪽계곡에 김삿갓 유적지를 품고 있고, 선낙골계곡의 가을단풍이 매우 아름다운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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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언은 안동 김씨 시조인 고려 개국공신 “선평”의 후예로 순조 7년(1807) 3월3일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아버지 김안근과 함평 이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본명은 柄淵, 호는 蘭皐이다. 순조12년(1812) 평안도 용강에서 “홍경래”의 亂(신미년 12월)이 일어났을때 할아버지 “김익순”는 선천부사로 있으면서 “홍경래”에게 항복하여 역적으로 몰려 廢族처분을 받고, 아버지인 “김안근” 역시 할아버지의 옥살이 뒷바라지 하다가 할아버지가 참형을 당하자, 울화병이 발병하여 석달만에 세상을 뜨자,
어머니가 종복인 “김성수”의 고향인 황해도 곡산으로 이사, 그곳에서 어머니가 세아들(큰 아들 병하, 둘째 병연, 막내 병호)에게 할아버지의 사연을 감추고 글을 가르쳤다.(김병연은 그때 나이 6살)
몇해 후 “김익순”에 대한 문제는 본인에 국한하기로한 조정결정에 의해 곡산을 떠나 경기도 광주, 이천, 가평을 전전하다가 강원도 영월에 정착하게 되었다. 김병연은 20세 되던해에 영월 동헌에서 백일장에 응시하여 할아버지를 비판하는 글로 장원으로 급제한다.
그후 자신이 비판한 글의대상이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못해 22세에 집을 나서 모든 인연을 끊어 버리고 한 조각 구름처럼 비운의 삶을 영위하며 동가식 서가숙하는 방랑생활로 서민들의 애환을 시로 읊어 서민문학의 큰 틀을 마련하였다.
산행들머리인 노루목 김삿갓묘 입구에는 장승과 돌탑이 조성되어있고 “시선 김삿갓 난고선생 유적비”와 시를 새겨놓은 바위작품들이 산님들의 시선을 붙잡고 멋스럽게 만들어놓은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나면 작은 당집이 있는 좌측옆에 마대산등산안내판이 자리잡고 있어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은 주거지1.8km지점이다.
계곡따라 포장길로 산행을 시작하니 길가에는 물봉선과 달맞이꽃이 화사하게 피어 산님들을 맞이하고 개울을 건너 비포장길로 접어드니 주위에서는 쓰르람이 목청을 돋구어 울어대고 주거지와 선낙골가는 갈림길인 다리를 건너 조금가니 마지막 화장실이 나타난다.
가을이라지만 아직까지도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니 더위에 지친 산님이 시원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니 “아이 시원해”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주거지500m"의 이정표를 지나니 갈대가 가을의 정취를 물씬풍기고, 뙤약볕이 내려쬐는 산길을 걷다보니 이마에는 금새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니 한 산님이 ”아이 따거워“하면서 힘들어한다.
“마대산정상2.3km, 김삿갓주거유적지200m"의 이정표가 있는곳에서 다리를 건너 ”난고 김삿갓 주거지“의 설명판에 있는 주거지에 도착을 하니(11:30) 시원한 약수터가 있는 마당에 해설사가 거주하는 집한채와 김삿갓 초상화를 모셔놓은 초라한 蘭膏堂이 산님들을 맞이한다. 이곳은 조선조 말엽 전국을 바람처럼 떠돌며 날카로운 풍자로 상류사회를 희롱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시민의 애환을 읊은 방랑시인 김삿갓이 생전에 거주하던 곳이다.
주거지를 배경으로 해설사(해설사는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방문객들에게 해설을 하고 난고 김삿갓 문학관을 오고가면서 생활을 한다고함)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후 산길을 이어가므로 본격적인 마대산의 산행이 시작된다.
너럭길의 물이 없는 어둔이계곡길을 걷자니 이마에는 어느새 구슬땀이 맺히고 산길은 된비알길로 이어지다 17여분만에 로프가 설치된 깔딱고개가 시작된다. 멋스런 노송군락지를 지나니 여름이 지나감이 아쉬운지 매미가 목청을 돋구어 울어되고 초라한 묘가 있는곳에 도착을 하니(11:55) 바람이 시원스럽게 불어와 기분이 상쾌해진다.
깔딱고개에는 가끔씩 로프가 설치되어있고 힘들게 깔딱고개를 오르자니 이마에는 구슬땀이 물흐르듯 흘러내려 손수건으로 닥다보니 손수건은 금새 흥건히 젖어버린다. 멋스럽게 누워있는 노송을 지나니(13:13) 곧 이어 능선에 도착을 하고 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오니 힘들지만 기분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비알길을 오르다보면 다시 능선에 도착을 하고 오솔길같은 능선길을 걷다보면 참나무숲길인 된비알길이 이어지다 로프가 설치된곳을 힘겹게 오르면 “정상0.1km, 전망대0.9km., 김삿갓주거유적지”의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12:44) 이곳에서 100m을 가면 정상석이 있는 고스락에 도착을 한다.
정상의 조망은 북동방향으로 뻗은 주능선과 서북방향으로 태화산이 손에 잡힐 듯 시야에 들어오고 그 밑으로는 남한강을 따라 고씨동굴 국민관광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후 삼거리에 도착 점심관계로 안내산악회 회원님들을 기다리다 전망대쪽으로 하산하다보면 오솔길이 이어지다 잠시 비알길이 나타나고 곧 이어 길을 다시 평탄해진다.
전망대 가기전 널따란 장소에 자리를 마련하고 즐거운 식사를 하면서 한 산님이 가지고 온 냉소주에 간재미회를 안주삼아 정상주를 대신한다.(13:32~14:20) 식사를 마치고 산길을 이어가니 고사목이 누워 길을 막고 “전망대20m. 처녀봉0.9m"의 이정표가 있는곳에 도착해 전망대로 올라서니 노송한그루가 바위위에 멋스럽게 자라 사진촬영장소를 제공해준다.(14:25)
1,030m 전망대바위의 조망은 정상보다 좋다. 동쪽방향으로 함백산과 태백산, 구룡산 선달산을 따라 고치령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하늘금이 파도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노송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후 오던길로 되돌아와 처녀봉으로 향하다보면 참나무숲길과 오봇한 오솔길이 이어지다 잠시 된비알길을 올라서면 송림숲이 멋스럽게 우거진 930m봉인 처녀봉에 도착을 한다.(14:44)
처녀봉은 소나무숲사이로 능선이 어렴프시 조망될뿐 조망이 그렇게 좋지를 않아 잠시 휴식을 취한후 하산을 하다보면 급경사의 참나무숲길이 이어지고 가끔씩 멋스런 노송이 산님들의 피로를 풀어준다. 하산길인줄만 알고 내려가다 가끔 오르막이 이어지면 무척 힘이 드는듯한 착각에 빠진다. 마치 삶을 살아가는 이치를 아르켜 주려는듯......
“김삿갓묘역1.2km”의 이정표를 지나 한참가다보면 선낙골 왼딴 농가가 나타나고 콘크리트포장길의 선낙골에 도착을 한다. 선낙골계곡의 이끼가 낀 아담한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발을 담그니 물이 어찌나 시원한지 산행의 피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는 느낌을 받는다.
족욕을 마치고 하산하다보면 억새가 멋스럽게 휘날리면서 가을이 성큼 닥아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산악회 리본이 수없이 달린 갈림길을 지나가다보면 계곡의 나무위에 버섯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고, 작은폭포와 멋있는 소(沼)가 산님들을 유혹하는 계곡의 산길을 이어가다보면 처음지나갔던 갈림길인 다리에 도착을 한다.(15:50)
“주거지1.5km”의 이정표를 지나 유적지에 도착 출발할 때 못다본 작품들을 감상하며 기념사진을 찍은후 주차장에 도착하여 난고 김삿갓 문화관과 주위의 작품들을 둘러본후 5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안내산악회에서 마련한 열무김치와 불고기를 안주삼아 소맥으로 갈증을 달래므로 행복했던 마대산 산행을 추억의 한켠에 간직한채 차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