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픈 열도/김충식(고21회) 지음/332쪽·9800원·효형출판
주요 중앙일간지 도쿄 지사장을 지내며 필봉을 휘두른 경력 28년의 신문기자가 10편의 글을 통해 한일 관계의 비화
-책 소개-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그들에게 돌을 던지더라도, 시대의 수레바퀴에 짓눌린 그들의 삶, 죄의식과 강박에 떨며 살았던 그들의 안쓰러운 일생을 한번쯤은 중층적으로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증오하고 침을 뱉기에는 너무도 쓸쓸하고 가련한 삶, 나는 오늘 연민의 지평에서 그들을 바라본다.”
이 책은 일본과 기막힌 운명의 실타래를 맺은 10명의 한국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월간 신동아에 ‘열도의 한국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평전의 주인공인 이들에게서 언뜻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다.
일본의 힘을 업고 혁명을 도모했던 김옥균, 일본인이 준 것은 입에 대지 않겠다며 곡기를 끊고 버티다 쓰시마(對馬) 섬에서 숨진 최익현,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으로 일본 자기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삼평, 무명 씨름선수에서 전후 일본 대중의 영웅이 된 레슬러 역도산(김신락), 재일 한국인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회성…. 개중에는 반일 인사도 섞여 있지만 친일파라는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는 이도 있고, 한국의 핏줄을 감추려고 몸부림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일본열도와 한반도를 오가며 펼친 꼼꼼한 현장취재와 관련 문헌에 대한 해박한 독해를 바탕으로 쓴 콕콕 찌르는 듯한 스타카토의 문장을 읽어 가노라면 만나게 되는 키워드가 ‘연민의 지평’이다.
서두에 인용한 문장은 2부 ‘나에게 돌을 던지라’의 서문에 나온다. 조선 도공의 후예지만 2차 대전 패전 상황에서 미국과 항복 협상을 맡아 ‘일본과 일왕을 구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도고 시게노리(박무덕), 자신이 한국계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이름뿐 아니라 일생까지 거짓으로 일관한 소설가 다치하라 세이슈(김윤규) 그리고 역도산이 그 주인공이다.
국가와 민족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은 ‘배신자’다. 그러나 개인의 관점에 서자면 이들은 ‘시마구니 곤조(島國根性·섬나라 근성)’라는 일본사회 특유의 배타적 문화 속에서 자아실현을 위해 자학의 인생을 산 사람이다.
물론 이들과 반대로 문학작품과 역사 연구를 통해 일본인의 이중적 허위의식을 거침없이 고발한 김달수와 이회성 같은 강골의 삶도 있지만 저자는 그들의 핏줄 속에서도 운명과 같은 한(恨)의 정서를 발견한다.
저자는 도자기 종가 심수관가의 후손으로부터 1960년대와 1970년대 형제가 나란히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와 그 친동생 사토 에이사쿠의 집안이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건너온 한국계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유력한 차기 일본 총리 후보이자 독도 해저 측량 소동을 배후에서 지휘한 강경파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그렇다면 이런 오랜 악연의 연원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저자는 시마구니 곤조에 주목한다. 시마구니 곤조는 왜 서양에 적용되지 않고 한국을 겨냥하는가. 저자는 임란 이후 일본의 왜곡된 가해 심리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그러나 거기에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한반도에서 좌절한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의 또 다른 한(恨)이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