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21 15:04:24 (220.86.143.148)
5월 19일(수) -
재경목중고 "상목회"(회장 김종달-5회)가 주최한 금년 두번째 탐방 여행으로 충남예산 "수덕사"를 다녀왔다. 참석총원 33명이 사당역 1번출구에 모여 출발한 시간은 아침 9시 30분.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행담도 휴계소에서 잠시쉰다음 석문 방조제를 거쳐 삼길포에서 이재주동문(고18회/인천지역회장)이 제공한 자연산회로 거나한 점심을 먹고 수덕사로 향했다. 수덕사 대웅전은 때가마침 부처님 오신전전날이라 축하등으로 하늘을 온통매워 사진촬영이 불가능 하였다.
오는길에 삽교호를 거쳐 사당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즐거운 얼굴로 각자 해어졌다. 아래에 수덕사의 김일엽스님 이야기는 이렇다.
김종달 회장님에 의하면, 수덕사하면 김일엽 여사를 생각하게되고 춘원 이광수를 생각지 않을수없다고한다. 춘원의 애인이였다고까지 전해진 일엽 스님은 목사의 딸로 태어나 이화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 여성으로 화가 나혜석 등과 함께 자유연애론과 신정조론을 외치며 개화기 신여성운동을 주도했다.
김일엽은 일본 유학 후 신여성으로 문인의 길을 걷다, 어느 날 부처님께 귀의하여 영원히 사는 길을 찾아나섰던 김일엽 스님. 30여 년만에 일엽스님의 치열한 구도기가 새롭게 선보인다.
그러나 결혼에 두 번 실패한 뒤 1928년 32세의 나이에 돌연 출가해 세상을 놀라게 한다. 이렇듯 겉으로 보여졌던 파란만장한 삶 때문에 '사랑에 실패하고 출가한 여승'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그 반작용으로는 치열한 구도자적 삶의 모습이 가려져 있었다.
잡지 <신여자>를 창간한 조선의 대표적인 신여성 김일엽(金一葉) 스님은 결혼 실패 후 어느 날 홀연히 입산하여 수덕사의 수도승이 되어 반평생을 수덕사에서 보냈다. 문필가와 승려로서도 명성을 날리던 이 천재적인 여성의 남편은 당시 일본 최고 명망가의 아들이자 조선총독부 고위 관리를 지낸 일본인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혈육이 바로 일당 김태신이있었다.
잡지 <신여자>를 창간한 조선의 대표적인 신여성 김일엽(金一葉) 스님은 결혼 실패 후 어느 날 홀연히 입산하여 수덕사의 수도승이 되어 반평생을 수덕사에서 보냈다. 문필가와 승려로서도 명성을 날리던 이 천재적인 여성의 남편은 당시 일본 최고 명망가의 아들이자 조선총독부 고위 관리를 지낸 일본인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혈육이 바로 일당 김태신이있었다.